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 주변에는 대만 가오슝 리우허 야시장(六合夜市)이 있다.
리우허 야시장은 한국인들이 가오슝에 놀러 오면 필히 가보는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코로나 19 시국 이전에는 늘 사람들로 붐비고 밤에는 화려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만이 사실상 국경을 봉쇄하여 외국인 대만 출입을 막은 후에는 야시장의 상권이 많이 죽어버렸다.
현재는 대만 현지인을 중심으로 버텨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노점 점포 수가 많이 줄었다.
사실 나는 야시장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해외여행으로 대만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하나의 문화로 즐기기 위해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사 먹지만 현지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야시장 음식은 대부분 그야말로 비만으로 가는 초고속 지름길이다.
물론 굽고 튀기고 달고 짠 맛들이 건강에 좋을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저녁에는 야시장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사정상 야시장을 지나치게 되는 날에는 다른 음식들은 눈요기만 한 채로 사 먹는 건 딱 하나가 있다.
바로 터키아저씨 케밥이다.
여긴 의외로 대만 현지 음식 가게들을 제치고 꾸준히 손님들이 있을 만큼 꽤 선전하고 있는 외국 음식이다.
내가 대만오기 6년 전부터 나름 이 가오슝 야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터줏대감 터키 사장님이 운영하는 케밥집인데 일단 야시장 음식 치고는 조리 과정이 일관성 있게 투명하다.
사용하는 재료는 어떨 지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 사장님은 미리 음식을 만들어 두는 법이 없이 주문이 있으면 그제야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치대고 따뜻하게 구워낸다.
그리고 손님 앞에서 채소와 고기를 올린 후 소스 넣고 잘 말아서 건내준다.
이게 일반적일 것 같지만 솔직히 굽고 튀긴 음식들은 밤새 진열해 놓고 영업이 끝나면 음식 재고를 다시 보관해두었다가 다음 날 다시 튀기고 구워 진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어느 나라를 가도 비일비재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야시장 음식을 잘 안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보통 터키 케밥이나 아이스크림 사장님들은 배가 안 나오고 잘생긴 분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리우허 야시장의 터키 아저씨는 시크하지만 어딘가 푸근한 감정이 들었다.
이 분을 알게 된 지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얼굴에 나이가 든 게 보이는 것 같은데 이 사장님은 처음 봤을 때 그대로 늙지도 않고 그대로이다.
건강하셔야 할 텐데 걱정이 많은 지 예전보다는 웃음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터키식 치즈맛 초코맛 푸딩도 시도하고 다른 터키인과 함께 장난 많은 터키 아이스크림도 팔았지만 지금은 혼자서 매일 케밥 마차를 지키고 계신다.
케밥의 가격은 NT70원(한국돈 약 2,800원 정도?)인데 닭고기 케밥만 판매하고 있다.
내가 케밥을 주문하면 사장님이 물어보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없다.
"辣不辣?(매운 거, 안 매운 거?)"
아직도 약간의 어눌한 외국인 발음으로 저거만 물어보고 묵묵히 할 일 하는 케밥 장인이시다.
매운 걸 시켜도 한국인 입맛에는 맵지 않고, 빨간색이 보이니 그래도 매운 소스는 넣었는가 보다 하는 정도이다.
약 5~10분 정도의 케밥 조리가 끝나면 따끈따끈한 케밥을 손에 쥐어준다.
별게 들어가지도 않는데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밀가루 피가 약간 매콤한 닭고기와 채소의 씹는 맛이 어우러져 한국인 입맛에 딱 맞아 향신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의외로 여기에서 파는 외국 음식들을 현지화시키면서 고수나 현지 향신료 소스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직도 입맛이 현지화되지 못했으므로 늘 식당에서 주문 전에 '노 샹차이!(고수 넣지 마세요!)'는 자동 반사로 말하고 다닌다.
리우허 야시장에 방문한다면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이 야시장은 리우허 2로 길거리에 저녁 5시 30분부터 노점이 들어서는데 그 전에는 야시장 거리가 아닌 그냥 일반 차량이 다니는 도로이다.
매일 5시가 되면 슬슬 차량을 통제하고 길을 막아 리우허 2루에 노점 마차들이 하나 둘 자리 잡고 새벽 2~3시까지 영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침이 오면 다시 차량들이 다니는 도로 기능을 하기 때문에 한국인들 특유의 근면성으로 해 떠있는 낮 시간에 일찍 가봐야 소용이 없다.
그냥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낮에 더위를 좀 피해 있다가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6시 즈음에 나와야 뭔가 구경도 하고 먹을 거도 있다.
위치는 가오슝 MRT 1,2호선 환승역인 포모사(美麗島) 역 11번 출구에 있어서 찾기가 쉽다.
오늘은 포스팅이 조금 허술한 거 같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라서 터키 아저씨의 케밥 조리 모습을 영상으로 마무리해 보았다.
(이 날은 손님들이 많아 밀가루 반죽하는 앞에 모습은 찍지 못했다.)
아.. 그리고 여기는 대만 돈 현금만 받는다.
제발 미화, 한국돈, 카드, 삼성 페이 내밀고 바보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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